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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의 리듬, 욕망을 숨기다

by 마버디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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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글 이미지

 

1585년, 엘리자베스 1세(케이트 블란쳇)는 잉글랜드를 다스리고 있지만, 가톨릭 대국 스페인의 위협은 점점 커져갑니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조르디 몰라)는 잉글랜드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무너뜨리고 가톨릭을 회복시키기 위해 무적함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스페인을 비밀리에 지지하며 반역의 조짐을 보입니다.

 

 

엘리자베스의 궁정에는 젊고 아름다운 시녀 베스 스록모턴(애비 코니쉬)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세계(아메리카)를 탐험하고 돌아온 대담한 항해사 월터 롤리(클라이브 오웬)가 궁정을 방문합니다. 롤리의 모험담과 거친 매력에 엘리자베스는 매료되지만, 여왕이라는 지위 때문에 직접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대신 베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롤리와 교류하려 하죠.

 

여왕은 베스와 롤리 사이의 감정을 시험하기 위해 그들에게 볼타 춤을 추도록 요청합니다. 이 장면에서 롤리는 베스를 들어 올리며 회전하는 볼타 춤을 선보이는데 여왕은 이를 지켜보며 내면의 갈등과 질투를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볼타 춤곡은 르네상스(1580~1600년대 초) 후반 유럽 궁정에서 유행했던 춤입니다. 여성을 번쩍 들어 올리는 우아한 커플 댄스로 프랑스의 앙리 3세 궁정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궁정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엘리자베스는 이 춤을 직접 추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춤은 여왕으로서 정치적 세련미와 인간적인 매력을 동시에 과시하는 수단이 됩니다.

 

당시로서는 여성을 들어올리고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모습이 상당히 파격적이어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볼타를 선정적이고 위험한 춤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빠른 템포의 3박자 리듬으로 왈츠의 초기 형태로 여겨지는데 저음을 연주하는 현악기(비올라 다 감바)와 건반악기(하프시코드), 기타와 같이 손으로 튕기는 악기(류트) 등으로 반주합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작곡가 윌리엄 버드는 볼타를 위한 곡, "La Volta" 를 썼습니다. 이 곡은 볼타 춤곡의 리듬과 스타일을 빌려온 하프시코드용 음악으로 춤의 경쾌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킵니다.

 

한편, 엘리자베스가 롤리에게 느꼈던 감정은 비극적으로 흐릅니다. 롤리는 신분 차이로 인해 여왕에게 다가갈 수 없었고, 결국 베스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됩니다. 베스는 임신 사실을 숨기고, 왕실의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엘리자베스의 분노를 사 궁전에서 쫓겨납니다.

 

엘리자베스는 롤리와 베스 모두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만, 내색하지 않고 감정을 억누릅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영화에서 카리스마와 고뇌를 모두 담아냅니다. 사랑과 자유를 꿈꾸지만, 여왕이라는 신분은 그 꿈을 끝없이 짓밟습니다. 월터 롤리와 베스의 사랑을 지켜보며, 질투와 외로움의 개인적인 감정을 억누릅니다. 여왕으로서의 체면과 국왕으로서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숙명적인 대가를 치릅니다.

 

스페인의 침공 위기 앞에서 엘리자베스는 은빛 갑옷을 입고 병사들 앞에 섭니다.

"나는 왕이요, 잉글랜드의 심장이다."

이 순간, 인간 엘리자베스는 사라지고 국가 그 자체가 된 상징이 탄생합니다. 큐레이션된 미장센, 장엄한 음악, 그리고 그녀를 감싸는 황금빛 광채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전쟁 장면은 스펙터클을 쫓지 않고, 오히려 엘리자베스의 내면 드라마를 강조하며 막이 내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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