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한다. 울기 위해"
파리넬리의 노래는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달래기 위한 절규, 관객을 위한 노래가 아닌 자신의 영혼을 위한 노래였습니다.
18세기 유럽,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소년 카를로 브로스키는 형 리카르도의 강요로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성 가수)"가 됩니다.
이후 그는 "파리넬리"라는 이름으로 오페라 무대를 지배하며, 왕족과 귀족들은 그의 노래에 감동하고, 여인들은 그의 신비로운 목소리에 열광합니다.
카를로는 형에게 지배당한 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을 갈망합니다.
파리넬리가 사랑하는 여인 알렉산드라를 향한 고통과 갈망의 감정을 담아 부르는 노래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2막에 나오는 '울게 하소서'입니다.
이 곡은 오페라 '리날도'에서 왕에게 납치된 알미레나 공주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당시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가수)의 화려한 기교를 돋보이게 하는 '다카포 아리아 형식'으로 작곡됩니다.
'다 카포(Da Capo)'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연주하라는 뜻을 가진 악상 기호로 반복하여 연주하는 부분은 카스트라토가 즉흥적인 기교로 화려하게 노래합니다.
당시는 오페라 관람이 순수 공연 감상이 아니라 사교 이벤트였습니다.
귀족과 부유한 시민들이 오페라 극장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즐기며 가수에게 아리아를 반복해서 부를 것을 요청하기도 했는데 이런 관습이 '다카포 아리아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무대 위 사회적 관습과 관객 태도는 오늘날의 연주자를 배려하여 연주가 끝난 후, 화답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파리넬리 같은 슈퍼스타가 어려운 아리아를 부르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박수갈채가 터졌습니다.
특히 고음이나 콜로라투라 기교가 나오면 관객들이 "브라보!"를 외치기도 했고 관객 반응에 따라 공연이 실시간으로 변했습니다.
한편, 파리넬리는 영국의 대작곡가 헨델과 경쟁하게 되고, 자신을 조종하는 형 리카르도와의 갈등도 점점 깊어집니다.
그는 헨델과 화해하며, 진정한 음악적 자유를 찾아 나섭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독립을 결심하고, 자신만의 목소리와 삶을 찾기 위해 형 곁을 떠나게 됩니다.
18세기 바로크 오페라는 지금처럼 작품 중심이 아닌 가수 중심 오페라였고 작곡가들은 특정 가수를 위해 작품을 썼습니다.
가수 중심 오페라 문화의 절대적 아이콘이었던 파리넬리는 인간의 목소리로 낼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고음, 화려한 기교, 긴 호흡을 구사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파리넬리 아리아는 Son qual nave ch'agitata인데 현재는 카운터테너 가수들이 파리넬리 스타일로 부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파리넬리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 등 전 유럽을 순회하며 공연했고 각국의 왕실과 귀족들은 그를 초대하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특히 스페인 펠리페 5세 궁정에서 10여 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던 왕을 매일 노래로 치료했다고 합니다.
파리넬리의 전성기 이후에도 오페라 세계에서는 카스트라토가 중심이었지만 그만한 대체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18세기 후반부터 윤리적 문제와 시대 변화로 카스트라토 문화는 쇠퇴하기 시작하지만, 파리넬리의 전설은 오페라 역사 속에 영원히 남았습니다.